존예보스대장 완벽한 파티베뉴 #상수 #아크틱 과 음식으로 인스타감성 챙기기 달인 #minjizone_food 의 조화는 폭풍업뎃을 불러오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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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대결 : 처칠과 히틀러 처칠은 시간이 날 때마다 차트웰 별장의 화실에서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한때 문명 세계의 운명이 이 두 남자의 의지 대결에 달렸던 적이 있었다. 최근 들어 이 두 사람의 예술적 노력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들이 남긴 유산이 또 다시 시험대 위에 올랐다. 미술품의 가격 결정에 작품의 진정한 가치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작가의 평판(명성 또는 악명)이다. 이들 작품의 판매는 그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소더비 경매에 나온 작품들은 처칠의 막내딸인 고(故) 메리 솜스의 저택에서 발견된 유품 중 경매에 부쳐진 256점(처칠의 공문서 송달함과 사진, 가구, 시가 저장 상자 등 다양한 가정용품이 포함됐다) 중 일부다. 처칠의 생가인 블렌하임 팰리스의 전경을 담은 그림, 유명한 블렌하임 태피스트리를 그린 그림, 정물화, 차트웰(처칠이 좋아했던 시골 별장)의 화실을 묘사한 그림, 프랑스의 풍광이 담긴 풍경화, 카르카손 성벽을 그린 그림(처칠이 딸 메리에게 처음으로 준 그림이다) 등이 포함됐다. “1920년대 초부터 1950년대 말까지 처칠의 화가 경력 40년에 걸친 작품들이다.” 소더비의 프랜시스 크리스티가 말했다. “이 그림들은 처칠에겐 매우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들이지만 객관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처칠이 그린 그림들은 한 화가의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주요 정치인이 남긴 기념품으로서의 가치를 따로 떼어 생각하기가 특히 힘들다. 그의 작품은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피카소는 ‘처칠은 다른 일을 안 하고 그림만 그렸어도 꽤 넉넉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조각가와 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처칠의 손녀 에드위나 샌디스가 말했다. 1947년엔 처칠이 필명으로 영국왕립미술원에 출품한 그림 한 점이 전시회에 채택됐다. 저명한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도 그의 작품을 칭송했다. 하지만 처칠은 늘 자신의 그림이 취미에 지나지 않으며 일종의 테라피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처칠의 재능에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런던의 미술상 크리스 비틀스는 “난 미술만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윈스턴 처칠의 대단한 숭배자”라고 말했다. “그는 화가보다는 벽돌공으로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었다.” (처칠은 차트웰의 텃밭 주변에 손수 벽돌 담을 쌓는 등 실제로 벽돌 쌓는 솜씨가 꽤 좋았다.) “그의 그림은 색깔이 탁하고 우중충하다”고 비틀스는 말을 이었다. “붓질을 너무 많이 해서 작품을 망쳤다.” 반면 히틀러 작품의 평범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별로 없는 듯하다. 멀록의 경매를 주선한 역사 문서 거래상 리처드 웨스트우드-브룩스조차 그의 작품들을 하찮게 여길 정도다. “히틀러는 인체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 여자의 누드를 스케치한 그의 작품을 두고 웨스트우드-브룩스가 말했다. “그는 비엔나 미술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일을 평생 한으로 여겼지만 이 그림을 보면 얼굴이 없고 신체비율도 엉망이다.” 거리 풍경을 담은 히틀러의 수채화가 관광지에서 파는 무미건조한 복제화 같다고 내가 말하자 웨스트우드-브룩스도 동의했다. “맞다! 히틀러는 1차대전 후 비엔나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관광객들에게 팔 이 작은 풍경화들을 그렸다. 실제로 그는 이 풍경화 중 다수를 우편엽서에서 보고 그렸다. 히틀러가 당시 가옥에 페인트 칠을 하는 도장공으로 일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 실제로 그는 일감을 구하려고 비엔나의 부잣집 대문을 두드리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작품의 가치를 짐작하게 하는 건 그들 작품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이다. 그런 배경은 처칠과 히틀러, 두 사람의 인생에서 그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드러내준다. “어린 시절 차트웰에서 가족이 화목한 시간을 보낼 때 이젤 앞에 앉은 할아버지 뒤에 서 있었던 게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고 샌디스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꽉 찬 인생을 한껏 즐겼다. 할아버지 자신이 꽉 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처칠이 미술에 진정한 재능을 지녔었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붓을 들었다. 음울하고 가난에 찌들었던 젊은 시절의 히틀러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는 화가가 되려던 꿈이 좌절되자 분노에 찼고 자신의 평범성을 끝내 인정하지 못했다. 이런 대조는 세계사에 참담한 결과를 남겼다. #처칠과히틀러 #히틀러그림들 #갤러리르몽드담 #전시소식 #공연소식 #대관문의 #개인전시 #미술서적 #미술서적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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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과 편견은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 앞에 물음표를 달아 놓고 생각 해봅니다. 경험이 많고 좋은것을 많이 본다고 좋은걸 만들 수 있지만 결국에 시간이 지나면 너무 좋은 것들을 접해서 그 습관과 편견도 줄이기란 많이 더 힘들꺼라 생각 됩니다. 그 전에 많은 이야기를 제일에 찾아주셔서 나눠 주신다면 정말 큰 영광입니다.자리만 만들어 진다면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안에 작은 “문화”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일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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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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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202배 마감청소 내기 ! 위너위너 치킨 디너 ~~ #이겼지만#리드줄공사가#더힘들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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